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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이 태조(李太祖)와 석왕사(釋王寺)  


 고려 말엽, 하늘을 덮을 듯한 청운의 포부를 지니고 팔도 명산을 몸소 찾아다니며 소원을 빌던 한 무사가 있었으니, 그는 함경도 출신의 이성계 장군이었다. 
그가 고향 함경도 안변의 어느 산속에서 산신령에게 백일기도를 정성껏 올리고 하산하려던 바로 그날 밤, 이상한 꿈을 꾸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영문을 알 길이 없어 답답한 가슴을 안고 부리나케 내려와 마을의 한 노파를 찾아가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해주며 해몽을 부탁하였다.  
“대장부가 받은 꿈의 계시를 한낱 계집이 어찌 말할 수 있겠소. 저기 높은 설봉산을 오르면 때를 기다리는 도승이 계실 터이니 지극한 마음으로 알현하고 여쭈도록 하시오.”  
하며 손으로 길을 가리켜주는 노파는 범상치 않았다. 
그리하여 이성계는 노파가 가르쳐준 설봉산을 향해 바삐 걸었다.  
과연 산기슭 커다란 바위 밑에 도승이 선정에 들어 때를 기다리는 듯이 앉아 있었는데, 그 노승은 곧 지공대선사에게서 법을 받은 무학 스님이었다.  
“스님, 어지러운 이 나라를 바로잡고자 힘을 얻으려고 정성을 드렸는데, 간밤에 촌가의 많은 닭들이 일시에 ‘꼬끼오’ 하고 울었으며, 다듬이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고, 또한 바람에 꽃이 날리더니 느닷없이 하늘에서 거울이 떨어지고, 저는 등에 석가래를 셋이나 짊어졌으니 무슨 연고인지 소인은 도무지 알 길이 없어 큰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어서 오시오, 내 장군이 올 줄 알았소. 그리고 그 꿈은 왕위에 오를 꿈입니다. 
자세히 말하면, 닭이 ‘꼬끼오’ 하고 울었음은 고귀한 위를 부르는 소리이며, 다듬이 소리 또한 군마를 인도하는 소리이고, 꽃이 날리면 열매가 맺기 마련이며, 거울이 땅에 떨어졌다면 반드시 소리가 나니 그것이 바로 왕업을 이룰 큰 길몽입니다. 
또 석가래 셋을 졌다면 그것은 임금 ‘왕(王)’자를 확인하는 꿈인 것입니다. 
산승이 장군의 상을 보아하니 왕의 상호가 이루어짐이 분명하오. 그러나 이런 말을 입 밖에 내서는 큰일을 그르치기 쉬우니 각별히 조심하시고, 이곳에 절을 지어 왕업을 무난히 성취하도록 기도하시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말에 하늘을 나는 듯 기뻤다. 
자신은 오직 왕업을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였고, 또 그것 때문에 희망찬 날을 보내던 것이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의 곁을 물러나 쉬지 않고 방방곡곡을 순방하며 기도를 올리고 송도에 다시 돌아왔다.  
그때 마침 고려는 이성계를 시켜 중국 대륙을 치고 나라의 북방 우환을 없애라고 하였다. 
이성계는 이때다 생각하고 군사를 돌이켜 썩어빠진 고려 왕조를 단숨에 무너뜨리고 이씨 조선을 세우며 자신이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는 용상에 오르자 곧 무학대사의 권유대로 설봉산에 큰 가람을 이룩하라고 분부하고 이름을 ‘석왕사’라 부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사찰의 건립이 완성되자 길주의 천불사에서 오백 아라한님을 한 분씩 업어 와 일일이 모셨는데, 마지막 두 분을 한꺼번에 업고 갔으므로 조선국은 오백 년을 채우지 못하고 사백 구십여 년 만에 몰락하였다고 전해진다.  
이성계는 그 후에도 자신의 일대와 인연이 깊은 고향 땅 석왕사를 자주 들러 국가의 무궁한 태평을 기원하였다. 
그리고 개국공신들의 반대에도 무학대사를 왕사로 봉립시켰다. 
그러나 이성계만은 스스로 궁 안에 내불당을 짓고 오직 부처님의 거룩한 존상에 매일같이 우러렀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항상 무학대사가 있어 왕업의 기반을 닦을 때부터 한평생 동안 그와 더불어 함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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